무대로 옮긴 카니발, 이승환 ‘표절할 수 있으면 해봐’(공연리뷰) 2012-12-31 15:59:03 | ||
[뉴스엔 김종효 기자] 공연이 시작되기 전 "이젠 늙어서 무릎이 쑤신다"던 팬들이 공연장에 드럼과 기타 소리가 들리자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보쓰'를 영접할 준비를 한다. 흔한 응원 플래카드나 야광봉, 풍선도 보기 힘들다. 일부에서 보이는 야광봉이나 반짝이는 머리띠가 오히려 이 공연에선 신기할 정도다. 아이돌 공연에서 보이는 전문가급 카메라 동원도 없이 팬들은 수건 하나로 땀을 닦고 다시 이를 흔들어대고 물로 목을 축여가며(혹은 뿌려대며) 열광한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말도 무색하게 공연 전체를 눈과 가슴에 담겠다는 생각이다. 이승환은 매년 공연을 해오고 있고 그때마다 "표가 안나가서 올해도 적자다"는 앓는 소리를 해오고 있다. 하지만 4만명을 가장한 400명의 팬들(이승환이 농담조로 자주 흘리는 말이다)이 그 '적자'를 흑자로 돌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승환의 공연을 찾아오는 팬들은 4만명 이상의 활동량으로 '공연을 즐기는 팬들의 자세'의 정석을 보여준다. 별다른 장치가 준비되지 않은 곡에선 팬들이 손수 준비한 휴지폭탄, 꽃가루, 종이비행기가 장관을 만들어낸다. 이승환 역시 그들의 열정에 부응하듯, 언제 앓는소리를 했냐는듯 무대 위에서 붕붕 날아다닌다. 그가 "아무리 살살 해도 늘 평균 이상의 공연을 해주겠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절대 허풍이 아니다. 팬들과 이승환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는 엄청나다. ♬이승환 공연은 물쇼와 불쇼 뿐이라고? 공연지신(公演之神), 공연의 신이라는 공연 브랜드는 다른 아티스트가 사용하면 손발이 오글거리는 자화자찬 제목이다. 하지만 이승환의 공연이 좋다는 의미 뿐만 아니더라도 이승환이 공연에 대해 갖고있는 철학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이승환은 '공연의 신'이라고 불리는 데 있어 손색이 없다. 이승환은 티켓 판매로 인한 수익금을 생각하지 않는다. 수익금이 얼마던간에 본인이 공연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사상 최대의 공연을 한다. 이번 연말 콘서트 역시 이승환의 목표는 '수익금 0원'이라는 황당한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공연에는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다. 그간 다른 스태프들에게 공을 돌리기 위해 이승환 스스로 얘기해오진 않았지만 이승환은 20여년째 공연을 직접 연출하고 있다. 이런 이승환의 노력 때문에 공연계에는 이승환이 '최초'로 일궈낸 것들이 즐비하다. ABR이나 360도 3D플라잉 등 공연장치와 기술은 물론 공연 외적으로도 최초의 1분내 전석 매진, 최초의 공연 브랜드 네이밍, 최초의 대규모 스탠딩 콘서트, 가수로서 최초의 내한공연 기획자(기타리스트 제프 백), 그리고 공연 전문 스태프 양성까지. 공연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릴만 하다. 하지만 이런 '최초'라는 타이틀 때문에, 또는 뭔가 '최초'로 보여주고 싶은 새로운 장치, 퍼포먼스에 묻혀 음악을 제대로 들려주지 못한다면 이승환의 공연은 지금까지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때 이승환의 공연을 가보지도 않고 그를 깎아내리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써먹는 패턴은 '이승환의 공연은 물쇼와 불쇼로 꾸며진 서커스'라는 비아냥이었다. 하지만 이승환 공연의 본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다. '쇼를 위한 음악', '쇼를 위한 쇼'가 아니다. 퍼포먼스를 대하는 이승환의 자세는 '음악을 위한 쇼'다. 이번 公演之神(공연지신) 이승환 콘서트 ‘환니발’ 공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악기별로 세심하게 손본듯한 완벽한 밸런스의 음향과 20여년 된 곡도 이승환 공연 특유의 세련된 편곡으로 되살려 귀를 즐겁게 한다. 이승환의 목소리는 젠하이저에서 특별히 제작한 시그니처마이크(본인은 페라리색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건 분명한 겨자색이다)를 통해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숨소리까지 전달된다. '쇼'는 이런 모든 '음악'을 더 화려하게 꾸며주는 부가적 장치일 뿐이다. 이승환이 치밀하게 신경쓴 음향은 1층은 물론 2층에서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밴드와 스윙 14명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CD로는 담을 수 없는 공연장만의 감동을 전달한다. 쇼는 오히려 전체 공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는 꼽히지 않을 정도로 이승환의 공연에는 음악을 뒷받침하는 더 많은 장치들이 즐비하다. ♬무대 위로 카니발을 옮겨올 생각을 하다니 이번 이승환 콘서트의 제목은 바로 '환니발(HWANNIVAL)'이다. 이승환의 이름을 따 언어유희를 한 '환타스틱(HWANTASTIC)' 공연에서 넘어서 아예 이승환의 이름과 카니발(carnival)을 합성한 것이다. 콘서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승환은 이번 콘서트 무대 위에 아예 카니발을 옮겨왔다. 뮤지컬을 콘서트에 접목한 것이나 하나의 큰 스토리로 콘서트를 꾸미는 경우는 있었으나 카니발을 콘서트화한다는 것은 발상부터 기발하다. 이승환은 이번 콘서트를 위해 역시 아낌없이 모든 물량을 퍼부었다. 단 한 곡을 위해 제작했다기엔 아까울 정도의 압도적 ABR 물량, 좌우로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카니발 특유의 분위기, 1층 객석을 좌우로 빼곡하게 늘어선 장치, 2층은 물론 3층 관객들까지 배려한 날아다니는 조종 기구, 춤추는 해골인형.. 공연장을 1층에서 볼때는 세세한 무대장치에 감탄하게 되고 2층에서 보면 그 엄청난 규모에 눈을 의심케 할 정도다. 이승환의 공연에서 야광봉과 풍선은 오히려 이승환이 힘들게 준비한 세밀한 조명과 레이저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오랜 팬들은 야광봉을 살 돈으로 차라리 '차카게살자' 모금함에 기부를 한다. 공연에서 조명과 레이저는 이승환의 곡 한 소절마다 그 분위기를 심오하게 담아내고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곡별로 모두 다르게 제작된 스크린 영상은 때로는 경이로운, 때로는 절절한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이승환의 과거 풋풋했던 시절 영상은 웃음을 주는 이승환 특유의 유머코드가 배어 있는 보너스다. 이승환은 자유로운 콘서트 분위기에서도 오페라 등에 쓰이는 미장센을 신경썼다. 그만큼 동선과 관련한 섬세한 무대장치까지 하나하나 배치에 공을 들였다. 무대 위로 옮겨온 대축제는 공연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창의성이 끊이지 않는다. 3시간을 넘어가는 공연 후의 여운은 마치 환상의 카니발에 몽롱하게 빠져있다가 끝났을 때의 아쉬움과 비슷하다. 몽환적 분위기에 취했다가도 때로는 동심을 다시 찾을 수 있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슬픔을, 때로는 내 몸이 이렇게 활동적이었나 싶을 정도로 '쳐달리는' 에너지를 준다. ♬누가 이젠 늙어버린 추억의 가수라고 했나? 40대 후반에 자그마한 체구. 이승환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다. 그러나 이승환에게 있어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는 이승환에게 있어 편견을 갖게하는 요소 중 하나다. 그 때문인지 이승환의 나이는 공식적으로 포털사이트에선 삭제됐다. 본인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어린 왕자'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나이가 들어감에도 팬들 기를 빨아먹고 살아 어리고 예쁘장한 얼굴을 유지하는 그의 외모 때문이기도 하다. 작은 체구도 마찬가지. 이승환은 작은 키에 체격도 우락부락한 편이 아니다. 굳이 정확히 짚어 말하자면 '병약한 엘리트'의 체구다. 앞서 언급한 동안과 어우러지며 '어린 왕자'라는 별명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됐다. 이같은 이승환에 대한 편견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승환 공연을 보기 전부터 이승환을 '추억의 가수'로 인식하고 이승환 공연의 에너지를 느끼기도 전부터 마음대로 지레짐작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승환의 공연을 보게 된다면 말 그대로 이 모든 것들이 편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승환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그 체구에서 미리 지레짐작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거대한 무대 전체를 휘젓는다. 오히려 이승환보다 어린 1020 팬들이 먼저 지칠 정도로 공연에서의 이승환은 에너지가 넘치는 '괴물'이다. 그러다가도 이승환은 특유의 미성으로 감성을 후벼파는 발라드로 3040세대의 추억을 자극한다. 10대부터 40대까지 관객들을 조율하는 이승환은 자신의 공연장에서는 어린왕자가 아닌 절대군주다. 이승환의 공연은 그의 독창적 아이디어와 함께 팬들까지 조련하는 것까지 합쳐진 완성형 무대가 됐다. 하나 더, 공연을 위해 다진 지금의 이승환은 20대도 울고갈 만큼 탄탄한 근육을 완성시켰다. '욕정덩어리'인 이승환의 팬들은 매년 그의 상의를 벗어줄 것을 끈질기게 요구한다. ♬‘어린왕자’에서 ‘공연의 신’으로 '어린왕자'로 불리던 이승환이 '공연의 신'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고 있다. 지난 10월 있었던 싸이와 김장훈의 공연표절 논란이 불거지면서 '모든 공연은 사실상 이승환이 원조다'는 주장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자연스레 이승환의 공연은 재조명 받았다. 또 과거 공연이 재조명되면서 이승환이 공연 하드웨어에 얼마나 투자했는지 알려지면서 관심이 늘어났다. 이승환은 최근 뉴스엔과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는 하드웨어가 한정돼 있다. 그 하드웨어 안에서 온갖 아이디어를 내서 바꾸고 또 바꾸며 자기 공연을 만드는 것이다"며 "새로운 하드웨어를 만드는게 중요하는데 보통 억단위의 돈이 든다. 나는 자본의 미학이 결국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내가 국내에서 그런 하드웨어를 새롭게 만드는 거의 최초의 사람이었다"고 자부할 정도로 자신의 공연이 늘 새롭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승환의 공연에 대한 자부심은 끝이 없다. 또 그만큼 책임도 많이 느끼고 있다. 하지만 늘 새로운 것만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 관객들을 배려하는 것도 콘서트 호스트인 이승환의 몫이다. 이승환은 "예전에 스토리 텔링이 강하고 미술적인 요소가 강한 공연(미스타리 미스테리 투어)을 했는데 관객들이 어려워하더라.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다보니까 너무 내 취향이 되면 어려워질 수 있다는걸 알았다. 공연은 넋 놓고 즐기러 가는거니까 너무 어려우면 안되겠더라"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이승환은 이번 공연을 공연 입문자용으로 꾸미겠다고 했다. 분명 어느정도는 영업용 멘트이고 이승환은 여전히 쳐달렸지만 이승환이 하고 싶은 록의 비중을 이전보다 다소 줄이고 편안한 편곡을 많이 준비한 것이 사실이다. 기존 이승환의 팬들은 체력이 남아서 아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말대로 '극소수의 산발적 의견을 존중하다 내리막 테크를 탄' 이승환은 대중적인 셋리스트로 공연을 꾸며 체력적으로도 부담없고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을만한 곡들이 대부분이도록 구성해 '빠'들을 100% 충족시키는 것이 아닌, 모든 관객을 70% 이상 아우를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대중적인 공연에서도 카니발만의 유니크하고 괴기스러운 무대장치와 분위기, 관객과 더 가까이 하기 위한 돌출 무대부터 이승환만의 기발한 생각이 돋보이는 무대장치와 영상장치는 마치 마법의 카니발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그야말로 오감을 만족시키는 공연은 왜 이승환이 공연지신이라는 별명이 절대 아깝지 않은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승환은 과거 컨츄리꼬꼬와 공연 표절 분쟁을 겪었다. 이번 공연을 본다면 그 누가 이런 공연을 '감히' 따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들게 한다. 한 마디로 공연에 대한 표절 논란의 여지를 더 업그레이드 된 공연으로 차단하는 셈이다. 이승환은 이번 공연을 통해 노래면 노래, 쇼면 쇼, 록이면 록, 발라드면 발라드 모두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와 동시에 건방져 보일 수도 있는 별명, '公演之神(공연지신)'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십수년째 계속된 이승환의 공연은 아직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놀랍게도. (사진=드림팩토리 제공) 김종효 phenomdark@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en@newsen.com |
출처: 뉴스엔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1231153330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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