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에서 가수로 돌아온 ‘마법의 성’ 김광진
슈스케 출연자들이 ‘편지’ ‘여우야’ 등 부르며 다시 화제
27일 단독공연, ‘더 클래식’ 함께했던 박용준과 한 무대

 

 김광진

“돌이켜보면 기막힌 우연과 인연의 연속이었다”고 김광진은 말했다. 지난 9년간 잘나가는 펀드매니저로 일하던 증권사를 그만두고 최근 전업 가수의 길로 돌아온 그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아이를 거느린 사십대 후반의 가장에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 “아무래도 운명인가 봐요.”

데뷔부터 그랬다. 중학생 때부터 가수의 꿈을 품은 그는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시절 통기타 듀오 ‘나르시스’를 결성했다. 그들을 눈여겨본 어느 음반 제작자의 요구로 오디션 테이프를 만들었지만, 음반 발표로 이어지진 못했다.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MBA) 공부를 하고 와서도 음악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그는 이화여대 교내 가요제 참가자에게 자작곡을 주고 코러스로도 참여했다. 당시 무대를 본 한 여대생이 미팅을 한 상대방에게 말했다. “유학 마치고 돌아왔다는 그 코러스 남자 괜찮던데요.”

이 얘기를 들은 한동준은 직감했다. 그 코러스 사내가 바로 이전에 우연히 들은 오디션 테이프의 주인공 김광진이라는 걸.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에서 가수 데뷔를 준비하던 한동준은 수소문 끝에 김광진에게 연락했다. “곡을 받고 싶습니다.” 김광진은 그렇게 작곡가로 데뷔했다. 1991년 한동준은 김광진이 만든 곡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로 단숨에 인기가수가 됐다. 이듬해 김광진도 에스엠엔터테인먼트에서 자신의 앨범을 발표했지만, 쓰디쓴 실패를 맛봐야 했다.

1994년 김광진은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로 취직했다. 그 즈음 박용준과 결성한 듀오 ‘더 클래식’ 1집도 발표했다. 솔로 1집의 쓰라린 기억 탓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직장에도 이 사실을 숨겼다. 그런데 ‘마법의 성’이 엄청나게 히트했다. 방송까지 출연하게 되면서 더는 숨길 수도 없었다. “야, 김 대리, 너 어제 텔레비전에 나오더라.” 다행히 회사에서도 그의 이중생활을 꺼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회사 행사 이곳저곳 불려다니며 노래하기도 했다. 이듬해 발표한 더 클래식 2집 타이틀곡 ‘여우야’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더 클래식은 1997년 3집을 끝으로 해체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증권사를 나온 김광진은 음악에 전념하기로 했다. ‘진심’이 담긴 솔로 2집(1998), ‘편지’가 수록된 3집(2000), ‘동경소녀’가 실린 4집(2002)을 잇따라 발표했다. 하지만 음반 판매량은 가파른 내리막길을 탔다. 더 클래식 1집 70만장에서 2집 20만장, 3집 8만장으로 줄더니, 솔로 2집은 4만장, 솔로 4집은 2만장까지 떨어졌다. 나날이 영역을 확장해가는 아이돌 댄스 음악의 틈바구니에서 그의 감성 아날로그 음악은 버텨내지 못했다. “나름 음악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니 우울해지더라고요. 엄청난 성공을 맛봤기에 절망감이 더했죠.”

‘음악을 한다는 게 참 힘들구나’ 하고 생각한 그는 2002년 동부자산운용 펀드매니저로 일하기 시작했다.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가슴 한 구석엔 음악에 대한 아쉬움이 늘 남았다. 2008년 신곡 세곡과 지난 히트곡을 모은 솔로 5집을 발표하며 위안을 삼았지만, 가수로 돌아온 건 아니었다.

2009년 어머니가 갑자기 뇌출혈로 세상을 떴다. 여섯달 뒤 아버지도 노환으로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부모를 잇따라 떠나보낸 김광진은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만하면 펀드매니저 일도 할 만큼 했다. 이젠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겠구나.’ 지난 6월 그는 9년 동안 몸 담아온 회사를 그만뒀다. 7월에는 서울 서초동에 개인 작업실을 열고 악보를 다시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시골의사’ 박경철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후임자 제안이 왔다. 그는 9월부터 한국방송 해피에프엠(FM)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디제이를 맡고 있다.

기막힌 우연과 인연은 또 찾아왔다. 지난달 초 위성·케이블채널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케이>에서 작곡가 6명의 곡 중 하나를 골라 부르는 과제를 받은 출연자들이 대거 그의 곡을 선택한 것이다. 이정아는 ‘편지’, 크리스는 ‘진심’, 버스커버스커는 ‘동경소녀’, 투개월은 ‘여우야’를 선택했다. 대중은 열광했다. 이 노래들이 한꺼번에 디지털 음원 차트를 휩쓸었다. 그 덕에 가수 김광진에 대한 재조명이 여기저기서 이뤄지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도 얼떨떨해요. 그야말로 축복이자 행운이죠. 뒤늦게나마 제 노래들이 인정을 받은 덕에 그동안 섭섭했던 마음이 싹 날아갔어요. 특히 음악을 하려는 후배들이 제 노래를 좋아하고 선택해줬다는 점이 선배로서 더욱 기뻐요.”

20대 후반 ‘마법의 성’으로 큰 사랑을 받았을 때 주변에선 “고목에 꽃이 피었다”며 뒤늦은 성공을 축하했다. 그런데 이제 그는 40대 후반에 또 다시 축하 세례를 받고 있다. “이게 바로 운명이겠죠. 음악을 열심히 해서 보답하는 길만 남은 것 같아요.”

김광진은 오는 27일 오후 5시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단독공연을 한다. 그의 오랜 음악 친구인 박용준을 비롯해 함춘호, 신석철, 김정렬, 이성렬 등 국내 최정상급 연주자들이 함께한다. “이런 연주자들과 한 무대에 오른다는 것도 어마어마한 복이죠. 제가 10년 전에 비해 보컬이 많이 늘었어요. 이젠 작곡뿐 아니라 보컬리스트로서도 인정받으려고요. 하하~”

그는 내년에 박용준과 더 클래식을 재결성하고 4집을 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용준이는 더 클래식 해체 이후 줄곧 연주자로만 활동해왔는데, 다시 같이 하자고 꼬드기고 있어요. 가능하다면 더 클래식 4집에선 힘있고 아름다운 연주곡도 해보고 싶어요. 제가 척 맨지오니 연주곡을 참 좋아하거든요. 방송, 홍보 같은 건 둘째 치고, 딱 꾸준히 공연을 할 수 있을 만큼만 되면 더 바랄 게 없어요.” 공연문의 (02)514-1630.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캐슬뮤직 제공

등록 : 20111108 15:13 | 수정 : 20111108 16:45

출처 :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504505.html

Posted by Kukul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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