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작가 빈자리 메울 ‘포스트 신경숙’ 찾아라

한윤정 기자

 

미국에서 작가 신경숙이 <엄마를 부탁해>로 한국문학 바람을 일으키고있는 반면 국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는 한국소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문학성과 시장성을 함께 갖춘 작품이 부족한 탓이다. 한국문학의현재를 진단하고, 대안을 찾아보는 자리를 두 차례에 걸쳐 마련한다

작년 여름,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6~8월)와 황석영의 <강남몽>(7~9월)이 베스트셀러 10위권(한국출판인회의 집계 기준)에 오른 이후로 이렇다 할 문학 작품이 없다. 조정래의 <허수아비춤>과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이 하반기에 잠시 반짝했을 뿐이다. 지난해 내내 문학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킨 작품은 10억원이 넘는 선인세 경쟁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와 일본 논픽션 표절 시비를 낳은 권비영의 <덕혜옹주>뿐이다. 더구나 올 들어 3월까지 월간 단위로 10위권에 든 한국소설은 아예 없다.

요즘 문단과 출판가에선 신경숙의 성공적인 해외진출 뒤에 짙게 드리운 한국문학의 그림자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영하, 김연수, 박민규 (사진 왼쪽부터)

미국의 <엄마를 부탁해> 열풍은 170만부라는 국내 판매기록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100만부 넘는 소설이 나온 건 2000년대 들어 처음이다. 최근 한국소설 중엔 5만부짜리 작품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한국소설 판매가 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강한 개성을 가지면서 독자들의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작품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의 실종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썼다. 그래서 ‘엄마’라는 보편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긴장감이 있다. 이런 작품을 한국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 인터넷 연재가 늘면서 과거보다 여건이 좋아졌지만 아직 소설 독자를 끌어들일 만한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 형편이다.

이와 함께 문학 출판사들이 국내 작가들에게 거의 투자를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출판사들은 몇년 전 일본소설이 인기를 얻자 앞다퉈 수입경쟁을 벌이다가 요즘은 영화 원작소설을 들여오는데 힘을 쏟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국내 작가들의 작품은 구색 갖추기에 머물렀다. 여기에는 작가들의 문제도 있다. 특정 출판사에서 꾸준히 책을 내는 외국작가들과 달리, 계속 출판사를 옮기다 보니까 장기적인 투자에 인색해질 수밖에 없다. 한기호 소장은 “인기 작가들이 출판사를 계속 옮기는 건 출판계의 과당 경쟁 탓도 있지만, 평론가들의 영향력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국내 문학출판은 평론가 그룹을 중심으로 조직돼 있다. 창비·문학과사회·문학동네 등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문예지나 문학상 공모를 통해 작품 발표기회를 얻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묶어내는 방식이 보편적이다. 그러다보니 작품 선택 기준이 독자의 눈높이가 아니라, 문예지 편집위원이나 문학상 심사위원인 평론가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임후성 21세기북스 문학팀장은 “외국에서는 문학출판에서 평론가의 활동이 거의 없다. 전문 편집자들이 투고 원고 중 작품을 고르고, 작가와 함께 계속 작품을 수정한다”고 말했다.

새롭고 강력한 작품이 부족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한국소설은 20년 이상 신경숙·황석영·공지영·김훈 등 일부 스타작가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들이 작품을 발표하면 한국소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고, 이들이 쉬거나 작품을 쓰는 동안에는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한국소설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건 외국소설이다. 임후성 문학팀장은 “대형 작가들은 독자들의 주목도가 높기 때문에 계속 일정한 판매량이 유지된다. 문제는 다음 그룹인데,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문단에서 주목 받아온 작가들의 소설 판매량이 요즘 들어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 자리를 외국소설이 밀고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 신경숙씨 역시 이 점을 지적한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미국시장은 자국소설이 9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시장은 국내작품 비율이 35%에 그친다고 들었다. 우리가 더 분발하면 이 부분을 되찾아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부분을 치고 들어갈 만한 힘 있는 작가들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출판계는 ‘포스트 신경숙’의 대표 주자로 김영하·김연수·박민규를 꼽는다. 소위 ‘3만~5만 작가’인 이들은 문학성을 갖춘데다 인지도가 높고 충성도 높은 고정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어서 최소한 3만부에서 5만부의 판매량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작품활동을 한 신경숙·공지영·김훈이 초기작부터 많은 독자를 확보한 것과 비교해보면 등단 10~15년인 김영하·김연수·박민규의 판매량은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

표면적인 이유는 2000년대 들어 영화·방송·게임·인터넷 등이 전통적인 문학독자를 뺏어가면서 문학시장이 위축된 걸 들 수 있다. 이는 지난 10년간 줄기차게 제기된 문학위기론의 주장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문학시장이 제대로 위기에 대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 시대는 바뀌었는데 신경숙 시대에 소설을 쓰고 평단의 인정을 받고 출판을 하던 방식이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가장 큰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작가는 김영하다. 현재 뉴욕에 체류 중인 그는 지난해 10월 <빛의 제국>(영어판 제목 ‘Your Republic Is Calling You’)을 휴튼미플린하코트 출판사에서 내서 신경숙보다 먼저 현지의 주목을 끌었다. 월스트리트저널, 미 국영라디오 NPR 등이 소설 발간을 보도한 직후 아마존닷컴 소설 순위 38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이 작품의 해외수출 에이전트인 이구용 엘케이매니지먼트 대표는 “신경숙의 10만부에 비해서는 적지만, 김영하의 6500부도 매우 의미있는 부수”라고 밝혔다. 김영하는 지난해 젊은 작가로는 드물게 자신의 모든 소설 판권을 문학동네 출판사 한 군데로 넘겼다. 문학동네는 지난해 2월 장편 <아랑은 왜> <검은 꽃> <퀴즈쇼> <빛의 제국>, 중편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로 구성된 ‘김영하 컬렉션’(6권)을 낸 데 이어 하반기에는 신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등 3권을 추가해 9종의 작품을 관리하고 있다.

김연수와 박민규의 경우도 비교적 시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밤은 노래한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등의 작품을 발표한 김연수는 예민한 문학청년의 자의식, 감성적 문체, 지적인 터치로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다. 박민규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일약 유명해진 뒤 <지구영웅전설> <카스테라> <더블> 등으로 이국적이고 개성있는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들이 ‘포스트 신경숙’이 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잖다. 문학평론가 심진경씨는 “세 작가 모두 평론가들이 읽기는 괜찮지만 독자들은 어렵다고 느낄 것 같다. ‘문학성’에 대한 자의식이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있으나 판매부수를 늘리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출판계에서는 체계적인 작가 관리의 필요성도 제기한다. 한기호 소장은 “문학 전문 에이전트가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에이전트’는 작가에게 맞는 출판사를 물색하고, 편집자와 함께 작품을 수정하며, 판매·홍보·마케팅을 관리하는 등 전반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 신경숙의 경우 미국 에이전트인 바바라 지트워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출처: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4102103395&code=960100
 
Posted by Kukulc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