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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출판사 http://www.hanibook.co.kr/book/view.php?no=676&pagenum=&ran=1&re=1
평전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앞서 살아간 옛사람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의 마음과 시대를 헤아려보는 여정일 겁니다. 우리는 그런 여정에서 나 자신이 옛사람이 되어 헤아려보기도 하고, 옛사람이 내 귀에 속내를 속삭여주는 경이로운 체험을 맛보기도 할 것입니다. 때론 앞길을 설계하는 지침이 되기도 하겠지요. 퇴계 이황은 그런 경지를 이렇게 읊었습니다.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을 못 뵈어, 고인을 못 뵈어도 가던 길 앞에 있네, 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찌할까”라고.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옛사람이 맞닥뜨린 갈등과 옛사람이 고민했던 선택을 헤아리며 그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세월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는 그런 가슴 벅찬 공명이 가능한 까닭은 그도 나도 시대를 벗어나서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란 이유 때문이겠지요. 그것이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우리 시대에 굳이 평전이 필요한 까닭일 것입니다.
-한겨레역사인물평전 ‘발간의 글’ 중에서
통념에 갇힌 기생의 이미지, 그 허상을 벗기다!
실증적 자료를 통해 되살려낸 기생 매창의 숨겨진 이야기들
아무나 꺾을 수 있는 길가의 꽃이라 하여 ‘노류장화(路柳墻花)’라 일컬어졌던 수많은 기생들. 이 말에는 기생을 하찮게 여기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멸시와 그들에게 웃음을 팔아야 했던 여인들의 애환이 함축되어 있다. 남자들만의 세계, 양반들만의 세상에서 천민으로 살아간 기생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런데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기생들 가운데 유독 매창은 지금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다. 평생토록 유희경을 유일한 정인으로 삼으며 춤과 노래, 시 등에서 뛰어난 재능을 펼치다가 38세에 짧은 생을 마쳤다는 비운의 기생. 하지만 그녀가 일편단심의 사랑을 했다는 통념은 후대 사람들에 의해 각색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삶 혹은 후대 사람들의 각색을 폄하할 순 없다. 매창은 허균을 비롯한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름을 떨쳤다. 그녀가 당대 사람들과 폭넓게 교유하며 예술과 사랑을 나누었고, 그런 그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시대를 넘어 지속되었기에 그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 아닐까. 이 책은 매창과 그 주변 사람들의 관련 자료들을 씨줄과 날줄 엮듯 엮어가며 그녀의 삶을 복원한다. 섬세한 시와 따스한 사랑이 녹아 있는, 인간 매창의 모습을 만나보자.
사랑은 과연 하나뿐인가, 일편단심만이 사랑인가?
지고지순함으로 가려진 조선 명기의 본모습을 찾아서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는구나.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지라 학창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 일별했을 이 시조에는 임과 이별하는 매창의 안타까운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기생이란 여러 남자를 상대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이지만, 매창은 한평생 이 시조에 등장하는 임, 즉 유희경(劉希慶)만을 사랑했다고 알려져 있다. 과연 실제로 그러했을까? 기생이었던 매창이 일편단심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게 가능했을까? 또한 그것이 매창을 드높여 칭송하는 이유였을까?
매창이 유희경만을 사랑했다는 에피소드는 1876년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英)이 편찬한 『가곡원류(歌曲源流)』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에는 위의 시조와 함께 ‘유희경이 서울로 돌아간 뒤 소식이 없자 매창이 이 노래를 지어 수절했다’는 짧은 설명이 덧붙여 있다. 이는 매창이 유희경만을 사랑하며 수절했다는 오해의 출발점이 되었다. 물론 매창의 시조가 뿜어내는 애절함이 그녀를 지고지순한 여인으로 이미지화하는 데 힘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이유를 덧붙이자면, 매창 연구가 시작된 1970년대의 풍토도 한몫했다. 열녀를 칭송하는 담론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1970년대에도 강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했으며, 이를 통해 기생 매창의 지고지순한 이미지가 구축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그녀의 다채로운 면모를 주목하는 데 방해요인이 되었다. 또한 실제로 매창이 유희경 한 사람만을 곁에 두었던 것도 아니다. 매창이 지은 시편들, 그리고 그녀의 주변 인물들이 남긴 여러 자료들을 통해 그녀의 삶을 간략히 재구해보면 다음과 같다.
매창은 1573년 전북 부안에서 아전 이탕종(李湯從)과 관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와 춤, 악기를 익혔고, 수령 주변에서 갖은 심부름을 하며 성장했다. 앞서 언급한 내용과 달리 매창은 여느 기생들처럼 수많은 남자들을 상대했다. 유희경과 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다 헤어졌고, 이후에는 서울에서 첩살이를 하기도 했다. 당시의 기생에게 첩살이란 좀더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였으며, 특히 매창은 이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녀가 부안에 있었더라면 기축옥사에서 역모에 연루되어 죽은 전라도사(全羅道事) 조대중(曺大中)과 함께 저세상에 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청춘을 보낸 매창은, 퇴기 취급을 받을 나이에 다다르면서 오히려 시를 짓는 시기(詩妓)로서의 이미지를 굳혀나갔다. 각종 연회에 초대받아 양반들과 시를 주고받고 노래와 춤을 선보이며 연회의 흥을 돋우는 기생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당대 최고의 시비평가였던 허균과 교유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허균은 매창에게 행운과 함께 불행도 가져다주었다. 연인이었던 윤선(尹鐥)의 선정비 옆에서 매창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린 일이 엉뚱하게 비화되어 허균을 비롯한 벗들, 그리고 매창의 말년에도 생채기를 냈기 때문이다. 38세의 짧은 생을 살았던 매창의 삶은, 이처럼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
기생 매창의 삶을 다룬 최초의 평전
매창과 문인들의 시를 비롯한 각종 사료를 통해 그녀의 삶을 복원한다!
우리 역사 속 인물들 중 평전을 집필할 만큼 사료가 많이 남아 있는 인물이 얼마나 될까. 기록이 남아 있는 인물들이란, 대부분 당대에 권력을 누렸던 이들이 아닐까.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권력과 거리가 멀었거나 신분이 낮은 인물의 경우 현재에 그들의 삶을 재구하는 일은 지난해 보인다. 게다가 한 인물의 일생을 되짚어보는 평전을 집필할 때는 더더욱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매창 역시 많은 사료가 전해오는 인물은 아니다. 그녀가 당대에 명성을 얻어 황진이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기생의 반열에 오르긴 했지만, 또한 당나라 최고의 여류시인인 설도(薛濤)와 견줄 만하다는 찬사를 받으며 저명한 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천민이라는 신분은 그녀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기에는 충분한 제약이 되었다. 이러한 제약은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이매창 평전』은 우선 현재까지 전해오는 매창의 시 58편,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 주고받은 시들을 기초 자료로 사용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조선시대에 창작된 고아하고 품격 있는 시들을 통해 매창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매창 주변 인물들의 문집 역시 평전 집필을 위한 실증적 자료로 사용되었다. 다행히도 매창이 유희경, 허균, 이귀, 고홍달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양반들과 당당한 벗으로 교유한 덕분에 그들의 문집에 매창에 관한 기록들이 간간히 남아 있고, 그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 매창의 삶을 재구해낸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을 평전 집필의 자료로 삼기에는 부족했다. 그리하여 더해진 것이 기생의 일반론과 관련한 사료들이다. 성장 후의 매창에 관한 자료들은 다소 남아 있지만, 어린 시절 매창에 관한 자료는 그 어디에서도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다른 어린 기생의 삶을 기록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일반론을 도출해내어 비어 있는 삶의 편린들을 추정해보는 방식으로 매창을 그려낸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이매창 평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기생 매창의 삶을 오롯이 복원해낸 작업이면서 동시에 조선시대 기생사(妓生史)를 조명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즉 이번 평전은 매창이라는 인물을 살펴보면서 역사 속에 잠들어 실체에 대한 조명이 미흡했던 기생의 삶을 실증적으로 복원해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깊다.
소설을 비롯해서 드라마나 영화 등 많은 매체들에서 기생이란 존재에 주목하는 것은, 소재의 특이성으로 인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실에 부합하는 실증적 연구들은 좀더 진척되어야 할 터. 『이매창 평전』은 구체적인 자료의 고증을 통해 조선 중기의 대표적 기생인 매창의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를 그려낸다. 눈 밝은 연구자의 고증을 통해 당대 문인들과 당당히 교유한 시기(詩妓)이자 사랑에 아파하며 눈물 흘리던 여인 매창은 그렇게 우리에게 아련하게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출처: Yes24 http://www.yes24.com/24/goods/8246049?scode=032&OzSrank=1
<새롭게 삶 조명한 윤선도 그리고 이매창>
한겨레역사인물평전 '윤선도', '이매창'편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고전 시가를 대표하는 고산 윤선도(1587-1671)와 개인사가 베일에 싸였던 조선 기생 이매창(1573-1610)의 삶을 새롭게 조명한 평전 두 권이 한겨레출판의 한겨레역사인물평전 시리즈로 나란히 발간됐다.
'윤선도 평전'은 박지원, 임꺽정 등을 조명했던 고전평론가 고미숙 씨가 집필했다. '자연미의 시인'으로 불리는 윤선도의 아름다운 시는 물론 인간적인 면모까지 다뤘다.
우선 평전은 '산중신곡'(山中新曲)과 '어부사시사'(魚夫四時詞)에 담긴 시를 주목했다. 윤선도가 50대 해남 금쇄동에 머물며 창작한 '산중신곡'과 보길도에 기거하던 60대에 남긴 '어부사시사'에 담긴 자연미를 통해 서정적 언어와 리듬을 살펴봤다.
아울러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정적과 치열하게 대립한 정치 논객으로서의 삶에도 관심을 보였다. 권력과 불화한 탓에 7년씩 두 차례나 유배생활을 겪은 이야기 등을 소개한다.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시절이 아니라 정쟁에서 패배하여 유배지에서 고단한 일상을 보낼 때 시조가 산출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의 마지막 시조 작품인 '몽천요'도 정쟁의 한 가운데서 지어졌다는 점이다."(96쪽)
268쪽. 1만4천원.
조선시대 기생 이매창은 평생 유희경이라는 사람만 사랑했고 춤, 노래, 시에서 뛰어난 재능을 드러냈다는 점 정도만 알려졌다.
고전문학 연구가인 김준형 부산교대 교수가 쓴 '이매창 평전'은 이매창에 얽힌 오해를 털어내며 삶을 실증적으로 복원해냈다.
책은 매창의 지고지순한 이미지가 오히려 다채로운 면모를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됐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매창은 여느 기생처럼 수많은 남자를 상대했고, 퇴기 취급을 받을 나이에 이르러 시를 짓는 시기(詩妓)로서의 이미지를 굳혀간다.
매창이 양반과 시를 주고받으며 명성을 얻은 것은 허균과 교유한 덕분이라고 책은 분석한다. 매창의 시 58편를 비롯해 주변 인물과 주고받은 자료가 토대가 됐다.
364쪽. 1만6천원.
2013/01/09 10:53 송고
출처: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01/09/0200000000AKR20130109080400005.HTML?did=117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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