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江선생에게
용기
글 한줄 쓰는데도 이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형이 보낸 전자우편으로 인하여 이리 용기내어 글이란 걸 적어봅니다.
참, 사는 게 그렇습니다.
희뿌연 안개 속에 갇혀 길을 잃어버린 채로 지내온 시간들.
그 끝을 알 수가 없어서 더 절망을 하게 됩니다.
그 끝, 그 출구를 알 수가 없어서 포기하지도 못한 채로 헤매는.
그 끝, 아니 그 출구라는 것 자체가 없이 "너는 그저 갇혀있는 존재다. 너에겐 출구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더라면 포기라도 했을텐데요.
포기도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는 이 삶.
'무지 힘들다'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갈팡질팡이고, 혼란이고, 혼돈입니다.
뚜렷한 목적도 없이 그저 갈대처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그렇게 시간들을 쳐부수며 노쇄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죽으면 사리는 많이 나올 듯.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지.
아무 것도 대답할 수 없고, 아무 것도 묻기조차 어려워서 그저 이렇게 숨어삽니다.
그저 살고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씩씩하게 살 수는 없지만, 목숨은 붙어있고, 배는 고프니 먹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언제가는 끝을 보겠지요. 언제가는 출구를 찾겠지요.
그 믿음 하나로 버틴다고 할까요. 그런데 자신감은 점점 줄어드네요.
충전지 닳듯이. 충전지를 오래 사용하면 충전량이 서서히 줄어들어 결국 전혀 충전지로서의 기능을 잃듯이.
그 전에 끝내야 할텐데.
그렇더군요.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고, 대하는 마음 가짐.
이제는 서로 지향하는 방향이 완전이 달라짐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서서히 잊혀지게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찾아온 것이겠죠.
그래도 한때는 열렬했고, 어떤 목표를 향해서 고민하고, 좌절하던 그 시절을 공유했기에 조금이라도 필요한 존재였으나, 이제는 가끔씩 떠오르는 존재, 추억이란 저장고에 가두는 존재.
그것이 화나고, 슬프다기 보다는 그저 그렇게 되는 것이지 라고 고개를 끄덕거릴 수 밖에 없는 현실.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대로인데 다만 이 현실이 나를 옥죄어서 그렇게 보이게 만들고, 그렇지 않음에도 그렇게 낙인을 찍어버리겠지만, 그렇다고 저항도 못하고.
항상 마음은 한결같은데, 행동하지 않음으로서 쌓이는 오해와 불신 그리고 잊혀짐.
그게 서글픕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리오. 그렇게 되도록 만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분노하거나, 폭발하거나 하지 않고, 오로지 슬퍼할 수 밖에요.
잊혀진다는 것은 두렵지만, 스스로 잊혀지는 길을 택했으니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다만 나는 나를 잊어가는 사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을 할 뿐.
언젠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날 그들을 제가 찾으면 되잖아요. 물론 그게 뜻대로 모두 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생각처럼 그대로 존재해줄지, 부담스러워하거나 회피할지가 관건이겠지오.
오랜만에 글을 쓰니 두서가 없고, 글이 난해하군요.
제가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될 지경입니다.
마음에, 머리 속에 쌓여진 수많은 번뇌가 글로써 잘 표현이 되지 못하네요. 그만큼 글발이 엉성해졌고, 표현력이 부족해졌다고 할 수 밖에 없겠지요.
잘 지내시는지. 독립했다는 것은 예전 만남 때 들어서 알고 있긴 한데, 혼자서 사는 삶의 가치가 쏠쏠하시는지.
아직도 혼자인지 아니면 선이라도 봤던가, 아니면 애인이라도 생겼는지.
XXX 조교 생활도 거의 막바지이고, 이번에 박사과정 수료를 한다고 했는데, 마무리 잘 되어가고 있는지.
내년 이후의 준비는 잘되어 가는지, 또는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중간 생략>
가끔 메일 보내주십시오.
주위 사람들 소식도 알려주시고요. 스스로 갇힌 제가 알아낼 수단은 없잖아요.
아주 가끔이라도 용기를 내어서 전자우편을 보내도록 노력해볼께요.
확실한 약속은 하지 못하지만.
언제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지 막연하군요.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면.......
오늘도 달은 차오른다.
오늘 밤도 개가 짖는다,쥐새끼가 설치나보다!
끝.
2008년 12월 11일 목요일.
河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