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 백제 ‘금동신발’ 고창서 발굴
마한 유력지 고분서 …보존상태 가장 좋아
중·일서 들여온 토기·도자기 등 대량 출토
한겨레 노형석 기자
» 전북 고창의 5세기 무덤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된 백제계 금동 신발. 왼쪽 사진은 엑스선으로 찍은 모습이다.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전북 고창에 있는 5세기 마한계 지배세력의 무덤 안에서 백제계 금동신발과 중국, 일본에서 들여온 토기, 도자기 등의 다국적 부장품들이 쏟아졌다. 특히 금동신발은 역대 국내 출토품 가운데 가장 온전한 모양새를 지닌데다, 기존에 없던 색다른 무늬들도 확인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는 최근 고창군 봉덕리 1호분을 발굴한 결과, 유력자 부부의 합장묘인 4호 구덩식 돌방(수혈식 석실)에서 금동신발 한 켤레와 금제 귀고리 두 쌍, 대나무잎 모양 머리 장식 등의 장신구, 중국 청자, 일본계 토기, 큰 칼, 화살통 따위의 각종 무기류 등이 대량 출토됐다고 28일 밝혔다.

핵심인 금동제 신발은 목 부분과, 맞새김(투조 기법) 장식한 옆판 2매, 그리고 바닥판을 작은 못으로 이어붙여 만든 얼개다. 바닥에는 뾰족한 스파이크 모양의 징 18개를 붙였고, 그 중앙에 용 1마리를, 발뒤꿈치 부분에는 고구려 벽화 등에 보이는 역사(장사)상을 투조로 장식했으며, 여백에는 봉황 등의 상서로운 새 무늬를 새겼다. 오른쪽 신발 안에는 발뒤꿈치 부분의 뼛조각도 남아 있었다. 최완규 연구소장은 “무령왕릉 등에서 나온 기존 백제계 금동신발들보다 보존 상태가 월등히 좋고, 훨씬 다채로운 문양이 새겨진 최상급 유물”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출토품인, 몸통에 구멍 뚫은 입 넓은 항아리(소호장식유공광구호)의 경우 고대 일본 토기인 ‘스에키’ 계통이란 점에서, 함께 나온 중국제 청자 반구호(주둥이가 소반처럼 생긴 병)와 더불어 당시 백제 지역의 활발한 대외 교류상을 드러내는 유물로 평가된다. 칼집까지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큰 칼과 칠기 화살통, 마구 등도 주목된다.

고고학자인 최병현 숭실대 교수는 “백제 무덤 발굴로는 1971년 무령왕릉 발견 이래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가 될 것 같다”며 “마한 토착 양식의 무덤에서 나온 금동신발 등의 고급 부장품들은 백제 왕실에서 마한 잔여세력을 회유하기 위해 내려준 사여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봉덕리 1호분은 봉분을 갖춘 큰 무덤 안을 파고 돌방 무덤 5기와 옹관 무덤 2기를 만든 마한 계통의 전형적인 ‘벌집형’ 무덤이다. 무덤 안 일부 석실에서 무덤 천장을 인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 조각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출처: 한겨례신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79156.html

가장 양호한 상태 ‘금동신발’ 나왔다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ㆍ전북 봉덕리 백제시대 고분서 출토
ㆍ일본 토기 ‘스에키’ 원류도 첫 발굴

전북 고창군 봉덕리 백제시대 분구묘(墳丘墓·봉분을 갖춘 무덤)에서 국내에서 출토된 금동신발 가운데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금동신발 1켤레가 출토됐다.

금동신발 모습(왼쪽은 X선 촬영 사진)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는 지난 6월부터 고창 봉덕리 1호분을 발굴조사한 결과 4호 석실분에서 금동신발과 중국제 청자, 칠기로 만든 화살통 등 다양한 유물을 발견했다고 28일 밝혔다.

금동신발은 목 부분과 측판 2장, 바닥을 작은 못으로 결합했는데 측판과 바닥은 투조(透彫·일부를 도려내고 남은 부분을 무늬로 나타내는 기법)로 장식됐다. 바닥에는 18개의 징이 부착돼 있으며 부착지점에는 화판이 장식됐다. 바닥 중앙에는 용이, 발뒤꿈치 부분에는 역사상(力士像)이 투조돼 있고 봉황이나 길상조도 새겨졌다.

또 작은 항아리를 장식하고 몸통에는 작은 구멍을 뚫었으며 아가리가 벌어진 소호장식유공광구호(小壺裝飾有孔廣口壺)도 국내 처음으로 발견됐다.

중국제 청자(왼쪽)와 소호장식유공광구호 문화재청 제공

최완규 소장은 “일본 고분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인 스에키(須惠器)에서 장식호(子持壺)라 불리는 것의 원류로서 한·일 고대 문화교류를 살필 수 있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5세기 중국 남조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이는 청자도 발견됐다.

두 사람을 합장한 것으로 보이는 석실분 중앙에서 청동제 대나무잎 모양 장식, 귀걸이 2쌍, 곡옥 2점, 칠기로 만든 화살통, 대도(大刀) 2점, 손칼 등도 수습됐다. 또 중국제 항아리, 은제 탁잔, 마구류와 철제무기류, 뚜껑접시 등도 발견됐다.

5세기 초엽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는 봉덕리 1호분은 방대형(方臺形)의 길이 72m, 너비 50m, 높이 7m 규모로 내부에 석실분 5기, 옹관묘 2기가 있다. 최 소장은 “봉덕리 1호분 주변은 마한 분구묘 계통의 분묘가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백제 영역화 이후에도 고창 지역을 중심으로 상당한 정치 세력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출처: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9281805355&code=960201

Posted by Kukulc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