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삼국지연의’ 나왔다 | |
1552~1560년대 명종때 찍어 중국·일본 통틀어 최고 활자본 | |
노형석 기자. | |
유비·관우·장비가 등장하는 15세기 중국 고전소설 <삼국지연의>(속칭 삼국지)는 언제부터 국내에서 읽혔을까. 최근 연구 결과 조선 왕실과 조정에서 임진왜란(임란) 전인 16세기 중반 금속활자본으로 <삼국지…>를 처음 찍어 유통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옛 서적·서화 연구자 모임인 포럼 ‘그림과 책’(공동대표 박철상·이양재)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1552~1560년대 명종 때 찍은 금속활자본 <삼국지연의>를 최근 발굴했다고 18일 밝혔다. 이 활자본(가로 19.5㎝, 세로 30.5㎝)은 전체 12권짜리 전질 가운데 관우·조조의 죽음과 그뒤 사건들을 다룬 8번째 권으로 1980년대 한 국내 사찰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활자본을 분석한 박재연 선문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1552년~1560년대 초중반 ‘병자자’(丙子字)란 구리 활자로 찍은 것”이라며 “국내 최고일 뿐 아니라 중국, 일본을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찍은 <삼국지연의> 활자본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조선에서 <삼국지연의>에 얽힌 첫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전한다. 1569년 신하 기대승이 선조에게 “<삼국지연의>는 황당무계한 무뢰배의 잡언인데 출판되기까지 됐다”며 읽지 말 것을 간언하는 내용이다. 이번 판본 발견으로 선조실록에 언급된 <삼국지연의> 출판본은 그 선대인 명종 때 찍은 것이며, 당시 왕실과 조정이 중국에서 소설본이 들어온 때부터 큰 관심을 갖고 출판 유통에까지 관여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지금까지 국내 최고의 <삼국지연의>본은 정묘년에 탐라(제주)에서 찍었다는 기록이 있는 목판본이었다. 그러나 이 판본에 기록된 정묘년이 임란 전의 1567년인지, 임란 뒤 인조 연간의 1627년인지를 놓고 학계에서는 논쟁이 거듭되어 왔다. 박 교수는 “임란 전 조선에서 <삼국지>본을 간행했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번 발견으로 그런 의문이 풀리게 됐다”며 “현존 세계 최고의 <삼국지>활자본이란 점에서도 중국과 일본 학계의 관심을 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국지연의>는 3세기 서진의 진수(233~297)가 편찬한 역사서 <삼국지>에 얽힌 전승 이야기들을 각색해 명나라때 작가 나관중(?~1400)이 지은 소설이다. 중국 최초의 판본은 ‘가정본(嘉靖本)’이라 불리는데, 1522년 명나라에서 간행됐다. 이번에 발굴된 활자본은 이 가정본과 그 30년 뒤 중국에서 나온 ‘주왈교본’을 바탕 삼아 독창적으로 편집·교정한 것이다. 한편 박 교수는 23일 서울 관훈동 화봉갤러리에서 열리는 포럼 그림과 책 정기 발표회를 통해 이 판본에 대한 고찰 내용을 공개한다. 글 노형석기자 nuge@hani.co.kr, 사진 제공 포럼 그림과 책 기사등록 : 2010-01-18 오후 09:56:27 출처: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99673.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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