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방에서 창녀촌의 눅눅함이 탄생했다”

 

등록 : 2012.02.24 19:36 수정 : 2012.02.26 16:55 

 

 
소설가 김태용이 작업실로 쓰고 있는 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고시원 방 안 의자에 앉아 자세를 취했다. 반쯤 열린 문에 가린 방의 나머지 반쪽이 맞은편 거울에 반사되어 보인다.

[토요판] 최재봉의 공간

 

⑩소설가 김태용의 고시원

 

눅눅한 냄새, 기괴한 꿈, 그리고 포주이야기

 

그 작가의 공간은 고시원 삼층에 있다. 일층 감자탕집과 이층 당구장을 지나 계단을 오르자 삼층과 사층이 고시원이었다. 입구 층계참에서 일행을 맞은 작가는 박카스 병부터 권했다. 어쩐지 고시원이라는 공간에 어울리는 음료다 싶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되어 있는 고시원 삼층에는 모두 서른한개의 방이 있었다. 사층에는 서른셋. 그다지 넓어 보이지 않는, 보통 크기의 건물 한 층에 무려 서른개가 넘는 방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작가의 방은 삼층 입구 근처, 상담실과 화장실 옆이었다. ‘방문은 살짝 닫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방문을 살짝 열자 좁은 실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로 1.5m,세로 2m 정도나 될까. 정면으로 책상과 의자가 놓였고, 오른쪽 벽에 옷걸이가 걸렸으며, 문 왼쪽 벽으로는 문학잡지들이 쌓여 있었다. 잡지 위쪽 허공에 공사장 같은 데 걸려 있을 법한 ‘위험, 출입금지’ 페넌트가 매달려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 작은 깃발은 마치 ‘문학의 세계로 들어오는 일은 매우 위태로운 결정이므로 금지한다’고 경고하는 듯했다.

그 금지를 위반하고 이 방에-그러니까 문학의 세계에 들어온 이는 누구였을까? 얼마 전 두번째 소설집 <포주 이야기>를 낸 소설가 김태용(38)이 이 작은 방의 주인이다. 그가 고시원을 집필실 삼아 쓰기 시작한 것은 첫아이가 태어나던 2005년 겨울부터였다. 다섯번째 고시원인 이곳 생활은 만 4년에 이른다. 가장 싼 방을 찾던 그에게 주인이 권한 게 보증금 없이 월 16만원인 이 방이었다. 이 고시원에도 더 넓거나 창문이 있는 방은 좀더 비쌌지만, 그에게는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면 충분했다. 고시원 방들에는 침대와 냉장고가 붙박이로 비치되어 있는데, 그는 그 둘을 내보내고 대신 책상과 선풍기를 받았다. 그에게는 고시원이 생활 공간이 아니라 작업의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닫힌 공간’은 어떻게 소설에 작용했나

 

김태용은 고시원에서 걸어서 십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 산다. 집에는 동화작가인 아내(서진희)와 두 아이가 있다. 그는 일주일이면 평균 사흘 정도 이곳 고시원에 온다. 대체로 밤 아홉시쯤 왔다가 새벽 서너시쯤 귀가한다. 마감이 있을 때는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다. 의자에 앉아 꼼짝 않고 열두시간까지 있은 적도 있다고.


그에게 아파트와 고시원 말고 다른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했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학교에는 버젓한 그의 연구실이 있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서 기존 교수 연구실의 두 배 크기에 산 쪽으로 창이 나 있어 전망도 훌륭하다. 학생들이 수업 듣느라 오가는 공간과도 떨어져 있어 조용하기까지 하다. 그곳엘 가본 어느 동료 작가는 “이렇게 좋은 델 놔두고 왜 칙칙한 고시원에서 쓰느냐?”고 묻기도 했다.

김태용이 이 공간에서 작업한 지는 만 4년. 일주일에 사나흘 밤 아홉시쯤 와서 늦은 새벽에 귀가한다.
“제가 공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입니다. 사실 이곳 고시원에 적응하는 데에도 서너달은 걸렸어요. 처음엔 공간이 낯선데다 꽉 막혀 있다 보니까 폐소공포증 같은 것도 오고,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지금은 폐쇄된 고시원이 좋습니다. 딱 글만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싶어요. 제가 좀 게으른 편이라 넓고 편한 공간에 가면 늘어지는 경향이 있어요. 힘들게 적응했으니까 고시원이 없어지지 않는 한 평생 여기서 쓰고 싶습니다.”

그는 고시원이라는 닫힌 공간에 매우 만족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어쩌면 닫히고 고립된 공간을 주된 배경으로 삼는 그의 소설적 특징과 고시원이라는 공간이 어울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의도적으로 닫힌 공간을 소설 배경으로 삼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반드시 그런 작정이 없이 시작한 소설이라도 쓰다 보면 어느새 공간이 닫혀 있는 걸 깨닫게 되곤 합니다. 아마도 글을 쓰는 공간이 저도 모르게 심리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의 소설에 고시원이 등장한 작품은 없지만, 고시원을 연상시키는 폐쇄된 공간은 종종 만날 수 있다. “새로 낸 책 <포주 이야기>의 표제작부터가 주된 배경인 창녀촌의 분위기를 그리는 데에 고시원의 눅눅한 냄새가 참고가 되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같은 책에 실린 단편 <머리>의 공간은 고시원의 모습을 더 닮았다. “냉장고가 없”고 “의자가 하나밖에 없”으며 냉기가 가득한 소설 속 방은 그 소설이 쓰인 고시원 방을 닮았다. 물론 이 방에는 소설 속 주인공이 거주하는 방의 “오른쪽 벽면에 붙어 있”는 창문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이 방에는 창이 없다./ 구름도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저기는 없다.”

<포주 이야기> 말미에 붙은 ‘작가의 말’은 고시원에서 쓰였음이 분명하다. 그가 쓰는 모든 글은 바로 이 고시원에서 쓴 것들이니까. 그는 소설은 물론 짧은 산문 하나도 고시원을 벗어나서는 쓸 수가 없노라고 했다. 집에서는 퇴고나 할 뿐, 초고를 작성하는 일은 결코 없단다. 학교 연구실 역시 잠깐 책을 읽는 공간으로나 쓸 뿐이고, 요즘 작가들이 애용한다는 카페 역시 그의 체질은 아니다. ‘닥치고 고시원!’ 작가 김태용의 모토는 아마도 이런 정도가 되지 않을까. 

 

폭발물 사고와 온몸 화상, 문학과의 재회

 

일단 고시원에 들어오면 노트북 컴퓨터를 켜고 글만 쓴다지만, 이따금씩은 길지 않은 ‘낮잠’을 자기도 한다. 침대가 없는 좁은 방에서 잠을 이룰 때, 그는 책상 아래에 머리를 두고 대각선 방향으로 발을 뻗는다. 베개 대용으로는 두툼한 국어사전을 쓰는데, 그의 꿈속으로 찾아오는 것은 낱말들이 아니라 끔찍한 이미지들이다.

“원래가 꿈을 많이 꾸는 편인데, 여기서는 특히 기괴한 꿈을 많이 꾸게 됩니다. 뚜렷한 스토리가 있다기보다는 이미지들이 지배적인 꿈인데요. 건물이 붕괴돼서 그 잔해와 먼지가 내게로 몰려온다든가 아주 거대한 새가 나오는 꿈, 또는 사람과 건물이 온통 물에 잠기는 꿈 같은 것들이죠. 이번 책에 실린 단편 <물의 무덤>에서 주인공이 머물던 여관이 물에 잠기는 장면 같은 게 아마도 그 꿈의 영향이 아니었을까요?”

김태용의 소설은 뚜렷한 이야기나 주제를 부각시키는 대신, 소설 쓰기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탐문하고 언어 자체를 문제 삼는 ‘메타소설’적 특성을 보인다. 그는 얼마 전 <포주 이야기>에도 실린 단편 <머리 없이, 허리 없이>로 제2회 웹진문지문학상을 받았는데, 심사위원들이 그 작품을 가리켜 쓴 “고도로 계산된 횡설수설”이라는 표현은 김태용의 소설 세계 전체에 해당하는 말이라 보아도 틀림이 없다. “김태용의 횡설수설은 해체하면서 동시에 뭔가 엉뚱한 이야기의 구조물을 지어내고 그 엉뚱함을 통해서 엉뚱하지 않은 번듯한 이야기들을 간접적으로 비판한다.”(웹진문지문학상 심사 경위)

 

월16만원짜리 집필실
입구 청장엔 ‘위험 출입금지’
작은 깃발이 내걸렸다
“창문 하나 없는 폐쇄된 방
집도 대학 연구실도 아닌
오직 여기서만 글이 써져요”

 

“기존의 ‘리얼리즘’ 소설들이 현실을 반영하여 거리를 두고 인공적인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다면 저는, 특히 이번 소설집을 쓰면서는, 내가 보았던 현실, 쓰고 있는 나, 읽게 될 독자-그러니까 이야기 이전의 공간과 이야기가 탄생하는 공간, 그리고 이야기 이후의 공간 모두를 고려해서 쓰고자 했습니다. 삶은 시작과 끝이 있어도 이야기는 시작만 있고 끝이, 그러니까 죽음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의 소설이 언어에 특히 민감한 촉수를 내밀고 그가 종종 ‘시적’(詩的)이라 할 법한 문장들을 구사하는 데에는 시 읽기와 쓰기가 그의 최초의 문학 수업이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을 터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를 읽었어요. 다들 좋아하는 이성복, 황지우, 최승자, 황인숙 같은 ‘문지’(문학과지성사) 시인들의 시집을 모으는 데 재미를 붙였죠. 한 100권 남짓 모았나? 읽으면서 그이들을 흉내내서 쓰기도 많이 썼습니다. 최인훈 선생과 오규원 선생을 좋아해서 그분들이 있는 서울예대로 갈까 했는데,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글을 쓰나’ 싶은 자격지심에 포기했죠. 고등학교 땐 이과였기 때문에 대학도 이과 쪽으로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문학을 포기하고서 들어간 대학 생활에 그는 적응하지 못했다. 수업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고 도서관의 책들을 다 독파하겠노라는 각오로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나마 마음을 붙인 게 대학 방송국이었고, 부인도 거기서 만났다. 1.2의 단출한 학점을 손에 쥔 채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군에서는 위생병으로 근무했는데, 제대할 무렵에는 다시 시험을 봐서 문학이든 영화든 대학을 다시 들어가야겠다는 각오를 굳힌 상태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지막 휴가를 앞두고 폭발물 사고를 당해 온몸에 화상을 입게 되었다. 10차례의 수술을 받는 동안 제대는 늦춰졌고, 그는 오랜 병상 생활 동안 더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점차 영화가 아닌 문학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다. 결국 뒤늦게 숭실대 문창과에 다시 들어갔을 때에도 그의 마음은 시에 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숭실대에는 시를 가르치는 선생이 없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시와 소설을 병행하게 되었다.

“소설로 등단하기 전에 시로 더 많이 응모해 봤는데, 별 반응이 없더라구요. 2005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할 때도 시와 소설 원고를 같이 보냈는데, 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어요. 소설을 쓰라는 운명이었던가 봐요. 허허.”

 

시인 김태용의 또다른 이름은 ‘자끄 드뉘망’

 

등단 뒤 그는 첫 소설집 <풀밭 위의 돼지>(2008)와 장편 <숨김없이 남김없이>(2010)를 냈다. 2008년에 제41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고 올해 웹진문지문학상을 받는 등 문단의 평가도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시에 대한 꿈을 아주 접을 수는 없었다. 지금도 소설보다는 시를 더 많이 읽는 편이라는 그는 소설을 쓰는 틈틈이 “휴식 삼아” 시를 써 보았고, 그 결과물을 올해 시집으로 낼 예정이다. <뿔바지>라는 제목의 시집 지은이는 그런데 ‘자끄 드뉘망’이라는 프랑스인으로 되어 있다. 일종의 트릭이란다. 그 시들은 대체로 이러하다.

“그것은 차갑고 단단하지/ 납처럼 달고/ 구름처럼 깊지/ 오후 속으로 사라지는 얼룩말의 빛깔/ 아 라고 말하면/ 오 라고 들리지/ 아니 그건 모두가 아는 진실과 무관한/ 여름 청어의 맛/ 돋아나고 물러서는/ 다리를 셀 수 없는 건반/ 그것은 축축하고 흘러내리지/ 보리처럼 흔들리고/ 보리처럼 보리처럼”(<얼굴> 전문)

그렇잖아도 그의 고시원 방 책상 오른쪽 벽에 붙어 있던, ‘자끄 드뉘망’ 앞으로 온 시집 청탁서의 정체가 궁금했던 터였다. 책상 정면으로는 이미 시효가 지난 청탁서들 또한 장식물처럼 붙어 있는데, 그 아래에 술김에인 듯 흘려 쓴 낙서가 눈을 잡는다. “함부로 술 먹지 말자! 나는 벌거숭이여야지 술주정뱅이는 아니어야 한다! 공부하자. 공부, 공부, 공부, 공부!”

글을 맺기 전에 고백하자. 김태용과의 인터뷰는 그의 공간인 고시원이 아닌 근처 카페에서 진행됐다. 사진기자는 악전고투를 벌여 가며 그 볼품없는 공간을 렌즈에 담았지만, 두 사람이 마주 앉기에도 불편한 그 방 안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기란 불가능했다. 다행히도 그와 나에게는 도망갈 공간이 있었다.

“고시원에 사는 분들과 별 교류는 없어요. 지나치면서 듣는 대화나 전화 통화에서 그분들이 하는 일을 짐작할 뿐이지요. 중국 동포들과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은 편이에요. 가끔은 젊은 여성들도 보이더군요. 대체로 표정들이 좋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작업을 위해 가끔씩만 쓰는 처지라서 그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소음이 있긴 하지만 글 쓰는 데 방해 될 정도는 아니고, 오히려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주기도 합니다.”

 

최재봉 문화부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영상은 한겨레티브이

 

 

출처: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20697.html

 

 

Posted by Kukul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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