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엿보다] (28) 라면

윤민용 기자 vista@kyunghyang.com

ㆍ일본 닛신식품 개발… 1963년 국내 첫 생산

한밤중 출출할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아무리 유혹을 참고 버티려 해도 옆에서 누군가 먹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한 젓가락”을 연발하다 결국 찬밥까지 말아먹고 마는 마력의 음식, 바로 라면이다.

‘한 젓가락’의 유혹 앞에 버텨내는 장사는 없다. 라면은 이제 온 국민의 야식이자 간식이 되었다.

전 국민의 야식이자 간식으로, 더불어 밥을 대체하는 대용식으로 라면이 자리매김한 지 반 세기가 다 된다. 본디 라면이라는 명칭은 중국에서 밀가루와 계란, 물을 반죽해 면을 뽑아 쇠고기 국물을 곁들인 ‘라몐(拉麵)’에서 유래했다. 현대인들이 즐기는 인스턴트 라면의 효시는 1958년 일본의 닛신식품이 대량생산에 성공한 ‘치킨라멘’이다.

국내에서는 라면기계 2대를 수입해 63년 9월 삼양식품이 처음 라면을 내놓았다. 당시 라면 가격은 개당 10원. 인스턴트 식품을 생소해하던 소비자들 때문에 라면회사 직원들은 직접 끓이는 시범을 보이고 각종 무료시식 행사를 실시해 라면을 홍보했다. 출시 후 3년간은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65년 롯데공업이 ‘농심라면’을 내놓으면서 라면시장에 뛰어들고 라면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면서 점차 인기를 얻기 시작해 69년에는 한 해 동안 1500만 봉지가 팔렸다. 당시 쌀이 모자라 정부가 앞장서 실시했던 혼분식 장려정책도 라면의 인기에 한몫했다.

끓는 물에 3분만 익히면 되는 간편한 조리법과 편리함, 라면 100g의 기본 열량이 400㎉로 계란, 야채, 해물 등을 곁들이면 한 끼 식사에 준할 만큼 포만감을 안겨줬기에 라면의 인기는 지속됐다. 롯데공업은 농심라면이 히트를 치자 아예 사명을 농심으로 바꿀 정도였다. 60~70년대 라면은 값싸고 저렴한 데다 시간까지 절약해준다는 장점 때문에 인스턴트 커피와 함께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역군으로 꼽히기도 한다.

라면은 이제 전 국민의 생필품으로 자리를 굳혔다. 특히 경기불황과 사회불안, 악재를 가장 즉각적으로 반영한다. 90년대까지 라면은 국민들의 안보불안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상품이었다.

94년 6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탈퇴, 1차 북핵위기가 고조됐을 때 ‘전쟁 가능성’에 동요한 국민들은 라면을 사재기했다. 평소보다 30% 이상 판매가 늘었고 20~30박스씩 사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해 6월14~16일 사흘간 팔린 라면은 총 5400만개로 국민이 하나씩 먹고도 남을 양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안보불안에서 비롯된 라면 사재기는 점차 사라졌다. 대신 치솟는 물가에 대비해 사재기하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초 밀가루값이 치솟으며 라면회사들이 라면 값을 봉지당 100원씩 올려받기로 하자 사재기가 재현됐다.

요즘에야 라면 하면 ‘매운맛’을 연상하지만, 86년 ‘신라면’이 출시되기 전에만 해도 라면은 순한 맛이 많았다. 매운맛을 콘셉트로 잡은 신라면은 당시 100~120원대이던 일반 라면에 비해 200원으로 고가정책을 취하면서 라면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지난 20여년간 라면업계 부동의 1위 역시 신라면이 지켰다.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이뤄진 제품 패키지 디자인은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인으로도 선정됐으며, 20여년 전 패키지 디자인 그대로 전 세계 70여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의 건조면, 유탕면뿐 아니라 생면, 동결건조면, 남아도는 쌀을 활용한 쌀라면 등 고급화 바람이 불고 있다. 또한 일본의 원조 ‘라멘’을 재현하는 생라면 전문점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한데 참 이상한 일이다. 많이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고 라면을 못 먹게 하던 엄마 몰래 끓여먹던 그 맛있던 라면이, 주말이면 친구들과 도서관 매점에서 사먹던 꿀맛 컵라면이, 이젠 전처럼 맛있게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입력 : 2010-05-09 18:44:45수정 : 2010-05-09 19:22:19

 

출처: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5091844452&code=9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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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ukul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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