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창에게
1.
계랑이 달을 바라보면서 거문고를 뜯으며 '산자고'의 노래를 불렀다니, 어찌 그윽하고 한적한 곳에서 부르지 않고 하필 부윤의 비석 옆에서 시를 더럽혔다니, 이는 낭의 잘못이오. 그 놀림이 곧 나에게 돌아왔으니 정말 억울하외다. 1
요즘도 참선을 하시는지.
그리움이 사무친다오.
기유년(1609) 정월
2.
봉래산의 가을빛이 한창 짙어가니, 돌아가고픈 생각이 문득 난다오. 내가 자연으로 돌아가겠단 약속을 저버렸다고, 계랑은 반드시 웃을 거외다.
우리가 처음 만난 당시에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 있었더라면, 나와 그대의 사귐이 어찌 십 년 동안이나 친하게 이어질 수 있겠소.
이젠 진회해(秦淮海)를 아시는지. 선관(禪觀)을 지니는 것이 몸과 마음에 유익하다오. 언제라야 이 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으리까. 편지 종이를 대할 때마다 서글퍼진다오. 2
기유년(1609) 9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부안의 기생 계생(계랑)은 시를 잘 짓고 노래와 거문고도 잘하였는데, 그와 가깝게 지낸 태수가 있었다. 태수가 떠나간 뒤에 고을 사람들이 비석을 세워서 그를 사모하였다. 어느 날 밤 달도 밝은데, 계생이 비석 옆에서 거문고를 뜯으며 긴 노래로 하소연하였다.(「성수시화」 87에서) 허균이 매창(계생의 號)과 가깝게 지내었으므로, 그가 달밤에 노래를 부르며 그리워한 옛 애인은 허균이라는 소문이 퍼졌었다. [본문으로]
- 송나라 때 시인. 진관(秦觀)이지만, 진회해라고 더 잘 알려졌다. 비분강개한 시를 많이 지었으며, 소동파에게 천거되어 벼슬을 얻었다. 바른말을 즐겨 하다가, 불경(佛經)을 베꼈다는 것이 드러나 쫓겨나기도 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