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로 간 현존 유일의 조선 별궁

조선 왕실의 문화재, 이제 후학들의 배움터가 된다

09.11.28 14:00 ㅣ최종 업데이트 09.11.28 14:00송영대 (greenyds)
▲ 안국동별궁 준공식 지난 25일 충남 부여군의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열린 안국동별궁 준공식의 모습
ⓒ 송영대
안국동별궁

지난 25일 충남 부여군의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조선의 유일한 별궁인 안국동별궁이 한국전통문화학교로 이전하여 복원하였고, 그 준공식이 열린 것이다. 이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땅도 질퍽거렸지만 이건무 문화재청장, 배기동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김무환 부여군수, 이진삼 국회의원과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직원 및 학생들을 비롯하여 약 300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안국동별궁은 조선 후기 고종 17년, 즉 1880년에 왕궁의 가례(嘉禮)를 거행하기 위해 지어진 별궁이다. 여기에서 가례란 왕실의 큰 경사를 뜻하는 말로서, 왕실의 혼례나 책봉 등의 의식예법을 말한다. 조선 후기에는 이러한 가례를 정리하여 <가례도감의궤>라는 책으로 편찬하였다. 안국동별궁은 실제 순종의 가례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 안국동별궁이 한국전통문화학교로 오기까지엔 여러 사연이 있었다. 조선 왕실에 있어선 소중한 장소였지만, 국가의 멸망과 왕실의 몰락, 그리고 후손들의 무지로 인하여 그 가치가 퇴색되었고 본래의 자취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준공으로 인하여 앞으로는 조선 왕실의 소중한 문화재로서 지속적인 보존과 가례가 이뤄지는 장소 등의 역할을 다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안국동별궁은 3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경연당과 현광루, 그리고 정화당이다. 이 중에서도 이번에 준공된 것은 경연당과 현광루이다. 이런 안국동별궁이 부여로 이전하기까지는 깊은 사연이 있다.

조선 유일의 별궁이 부여로 오기까지

▲ 안국동별궁의 현광루 현존하는 유일한 별궁의 한 건물인 현광루의 모습. 충남 부여의 한국전통문화학교로 이전하여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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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별궁

안국동별궁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민간에 매각되었다. 그래서 서울 풍문여고 건물로 사용되다가, 1965년 경연당과 현광루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양컨트리클럽으로 옮겨졌고, 이후 그에 대한 소식은 감춰져, 소위 사라진 궁궐로 알려져 왔었다.

그러던 2006년 2월 1일 YTN에서는 그동안 잊혔던 안국동별궁에 대한 보도를 하게 된다. 보도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로 그 행방을 알 수 없이 어디론가 사라진 안국동별궁이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시 발견된 안국동별궁의 모습은 서울시 600년사 등 문헌에서 나타나는 모습과 많이 흡사하다고 보도 되었다.

건물을 받치고 있는 각각 6개의 돌기둥과 나무기둥, 그리고 30여개의 나무 난간과 지붕 위에 있는 용머리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그 근거로 삼았었다. 또한 <고종실록> 등의 문헌에서 안국동별궁은 현광루, 경연당, 정화당으로 구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현광루라는 현판이 그대로 걸려있었다.

하지만 YTN의 보도 당시 안국동별궁은 창고로 쓰이고 있음이 확인되었고, 이는 다른 언론들도 앞다투어 보도하면서 파장이 일게 되었다. 잃어버린 궁궐의 일부가 발견되었다는 기쁨과 동시에 문화재가 훼손되고 방치되었다는 소식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게 되었다.

이렇게 현광루와 경연당이 발견됨으로 인하여 또 다른 안국동별궁의 건물인 정화당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2월 3일, YTN은 정화당의 행방이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개인 별장으로 옮겨짐을 확인하고 보도하였다. 이 정화당은 풍문여고의 건물로 쓰이다가 풍문여고가 해체되고 개인 별장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았다.

이듬해인 2007년, 안국동별궁을 소유하던 경기도 고양시의 한양컨트리클럽에서는 별궁의 온전한 보전을 위하여 경연당과 현광루를 문화재청에 기증하게 되었다. 문화재청에서는 이 안국동별궁의 보전을 위하여 고심하다가 한국전통문화학교로 이전하여 복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하여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 동안 31억의 예산을 들이고, 철저한 고증을 통하여 안국동별궁을 복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실을 이번 준공식에서 그대로 보여주었다.

안국동별궁은 앞으로 어떻게 활용되어야 할 것인가

▲ 안국동별궁 경연당 현광루와 함께 한국전통문화학교로 이전 복원된 건물. 앞으로는 <가례도감의궤>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왕실의 가례가 복원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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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별궁

안국동별궁의 이전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점이 많다. 일단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크게 외적 측면과 내적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외적 측면으론 이 안국동별궁의 건축학적 가치이다. 안국동별궁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왕실 건축물 중 하나로서 그 당시 건축양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안국동별굴을 이전하면서 이 건물을 축조하는데 쓰였던 부재나 조립 방법 등을 모두 기록들로 남겼는데 이 또한 차후 전통 건축물의 이전 복원이나 연구에 있어서 큰 참고가 될 수 있다.

또한 한국전통문화학교 내에는 전통건축학과와 전통조경학과 등이 있다. 전통건축학과로서는 훌륭한 실습시설을 갖추게 된 셈으로서, 캠퍼스 내에서 실습을 할 때 교재로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전통조경학과로서는 현재 안국동별궁의 주변 조경을 꾸미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여기에 참여하여 조선시대 정원을 복원하고 조성하는 데 일조하면서 실습을 행할 수 있다.

그리고 내적 측면으로는 안국동별궁에서 있었던 무형문화재를 복원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안국동별궁에서는 조선왕실에서 2차례의 가례를 행한 바가 있으며, 이를 모두 <가례도감의궤>를 통하여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남겨놓았다. 이렇게 문헌과 장소가 동시에 남아 있다는 점은 그에 따른 구체적인 복원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기고 하다.

즉 이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검토를 거쳐 무형문화재의 복원이라는 뜻 깊은 자산으로 남길 수 있다. 부여군으로서도 현재 관광자원을 백제와 관련된 것으로 다양하게 개발해 놓았는데, 이와는 별도로 조선 왕실의 행사를 정기적으로 거행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앞으로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전통혼례를 올리거나 조선의 행사들을 복원하여 시행하는 등 전통문화의 보급 및 교육장소로 적극적으로 활용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현실적인 여건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안국동별궁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서는 정화당의 이전 복원 또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본디 안국동별궁이 3채의 건물로 구성되었음을 상기해 본다면 현재 2채만이 남아있다는 점은 절반의 복원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안국동별궁의 활용과 보전에 대해 문화재청과 당국에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두어, 우리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에 적극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5일 충남 부여의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열린 안국동별궁 준공식과 안국동별궁의 내력 및 앞으로의 기대에 대해 서술해 보았습니다.

Posted by Kukul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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