共存主義/共生과 同化

이름에 ‘너도’ ‘나도’ 붙은 사연

Kukulcan 2014. 3. 3. 15:55

 

“그래 인정할게, 너도 방동사니”

이름에 ‘너도’ ‘나도’ 붙은 사연

 

2014년02월28일 15시15분
정봉남 기자 

 

나도 방동사니. 모두 닮은 듯 다르고, 다르면서 고유한 자신들이다. 지금 최선의 삶을 사는 생명체를 두고 우열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으리니. 나는 나답게, 당신은 당신답게 살아가는 일을 잊지 말아야겠다.

 

오래 전 그 풀의 이름을 듣자마자 풋 웃음이 나왔다. ‘나도방동사니’였다.
“그래 내가 인정할게. 너도 방동사니!”하고 혼자 웃었다. 썩 볼품 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나도’라고 이름이 붙는 건 무슨 까닭일까? 나도방동사니는 방동사니의 무엇을 그렇게 닮고 싶었을까?
식물에게 붙는 접사는 참 다양하다. 그 식물의 모양, 분포하는 곳, 특징 등을 잘 함축한다. ‘각시’로 시작되는 식물은 대개 작고 예쁘다. 각시제비꽃, 각시붓꽃, 각시둥굴레, 각시고사리는 ‘각시’자를 뗀 식물들보다 어여쁘다.
또 날렵하게 예쁜 꽃에는 ‘제비’가 붙곤 한다. 제비꽃, 제비난초가 그렇다. 꽃이나 열매가 크게 열리는 식물엔 ‘말’을 붙인다. 말나리, 말냉이, 말다래가 그렇다.
갯잔디와 갯메꽃처럼 ‘갯’이 붙으면 당연히 갯가에 사는 식물들이다.
‘두메’나 ‘구름’으로 시작되는 꽃은 십중팔구 깊은 산에 산다. 백두산엔 두메양귀비가 있고 구름국화를 보려면 높은 산을 올라야 한다. ‘하늘’이 붙으면 꽃이 하늘을 향한다는 뜻이다. 하늘나리는 참나리, 중나리, 땅나리와 달리 꽃을 꼿꼿하게 세워 하늘을 본다.

 

방동사니.

 

원래의 종보다 좀 열악하면 ‘너도’, 좀 우월하면 ‘나도’
이름 앞에 ‘나도’ 혹은 ‘너도’가 붙는 것은 대개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나도밤나무, 나도강낭콩, 나도닭의덩굴, 나도냉이, 나도송이풀, 너도바람꽃, 너도개미자리, 너도방동사니, 너도양지꽃 같이 그 종류도 다양하고 많다. 어떤 것들은 ‘나도’‘너도’ 두 가지 이름을 다 얻은 것들도 있다. 원래는 완전히 다른 분류군이지만 비슷하게 생긴 데서 식물의 어떤 특징이 다른 식물의 특징과 부분적으로 비슷할 때, 식물학자들은 ‘나도’와 ‘너도’를 붙인다.
그런데 여기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원래의 종보다 좀 열악한 느낌을 받는 식물이면 ‘너도’라는 이름이 붙고, 좀 우월한 지위를 점하고 있는 경우에는 ‘나도’라는 이름이 붙는다. 바람꽃에도 너도바람꽃과 나도바람꽃이 있는데, 너도바람꽃은 보통 꽃대에 하나의 꽃을 피우지만 나도바람꽃은 여러 개의 흰색 꽃이 줄기 끝에서 빙 돌아가면서 여러 송이를 매단다.

 

나도바람꽃

 

너도바람꽃은 꽃대가 10cm 내외이지만 나도바람꽃은 30cm 이상 자란다. 꽃 하나만 보면 너도바람꽃이 나도바람꽃보다 좀 작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지름이 1cm 정도인 작은 꽃은 젤리 모양의 꽃잎을 Y자 형으로 갈라놓고 끝부분에 노란색 꿀샘을 만들어 봄에 일찍 깨어난 곤충들을 유혹한다. 꽃받침을 꽃잎으로, 꽃잎을 꿀샘 모양으로 변형시킨 이유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진화인 것. 특히 너도바람꽃의 씨앗주머니인 골돌은 놀라울 만큼 아름답다. 열매가 한쪽의 봉합선을 따라 갈라지는 골돌 형태에서 씨앗이 나올 때 쯤이면 수평으로 펼쳐지면서 끝부분이 벌어져 갈라진다. 그 안에는 은구슬 같은 씨가 알알이 들어 있다. 흰색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과정을 거친 씨앗이 떨어져 1년차가 되면 뿌리 중간쯤에 아주 작은 덩이줄기가 형성되고 덩이줄기에 저장된 영양분으로 그 다음해에 또 새싹을 올린다. 새로운 꽃을 피우기까지는 약 3년 정도 걸린다.

 

너도바람꽃

 

꽃들의 가르침, ‘나답게 사는 건 나밖에 없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지구의 문이 열렸다 닫히는 곳에 새싹이 고개를 내민 것이라면 너도바람꽃의 새싹은 우리가 잊고 지낸 시간동안 우주를 여행하고 돌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너도바람꽃만이 보여주는 신비의 세계, 한 생명이 온 힘을 다해 넓힌 세계는 경이로울 뿐이다. 지금 최선의 삶을 사는 생명체를 두고 우열을 논하는 것은 참 부질없다. 그래서 ‘나도’라는 말이 주는 자긍심과 의지에 반해 ‘너도’라는 어감에서는 수동적인 서글픔이 배어나온다. 스스로 자기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누군가에 의해 인정받아야 하는 일의 차이 같은 것이랄까. 이름 너머 삶의 존엄을 먼저 배워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에서 오늘은 너도바람꽃을 지극히 옹호하고 싶다.

 

변산바람꽃

 

어쨌든 너도바람꽃 역시 바람꽃 집안이다. 학명으로 말하면 아네모네(Anemone). 바람의 여신 아네모네를 따서 붙여진 이름인데, 여리고도 고운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변산바람꽃, 풍도바람꽃 모두 닮은 듯 다르고, 다르면서 고유한 자신들이다.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은 “응”이라고 했다. “너도 바람꽃이니?” “응. 나도 바람꽃이야.” “너도 바람꽃이구나?” “응!” 이런 이야기들이 두런두런 오가는 숲을 상상해보면 마음에 후욱 봄바람이 분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자기를 키워간다. 그런가하면 땅속에 박은 뿌리로 자기다움을 고집하며 변함없이 자기를 지켜낸다. 결국 ‘나답게 사는 건 나밖에 없다’고 꽃들이 가르쳐준다. 세상살이의 숨가쁜 변화를 쫓아가지 못해 낙오하는 것 같을 때, 자기 호흡으로 꽃 피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없이 일러준다.
살면서 진짜 닮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자연과 맑은 눈빛! 더운 방안에서 겨울 추위를 잊고 살면 우주의 큰 흐름도 잊고 가난한 이웃들의 차가운 방 안 공기도 잊기 쉽지만, 겨울을 겨울답게, 나는 나답게, 당신은 당신답게 살아가는 일을 잊지 말아야겠다.

 

 


정봉남님은 아이책을 읽는 어른으로, 작고 소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눈밝게 들여다볼 줄 알며 직접 가꾸고 짓는 ‘핸드메이드’의 삶을 사랑합니다. 현재 광주 노대동의 책문화공간 ‘봄’의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출처 : 전라도닷컴 : http://jeonlado.com/v3/detail.php?number=12719&thread=23r01r01